주술고전을 떠난 지 4년. 이 지긋지긋한 샐러리맨 생활을 계속 하다보니 나는 원래도 삶의 보람 따위와는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왜 주술고전에 갔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가야 해서 갔던 것 같다. 주술사의 수가 적다니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곳에 입학했었는지, 그때 무슨 각오를 했었는지. 아니, 각오를 하긴 했던가. 전부 허상으로 느껴질 만큼 아련한 기억의 저편에 모든 것을 묻어두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거창한 각오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저 눈 뜨면 일하고, 배고프면 식사를 하고, 그렇게 버티는 삶을 살았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과 인연을 끊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어서 자나 깨나 돈 생각만 했다. 그 언젠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때만 기다리면서 기계처럼 살았다. 그러다가도 가끔씩 고전에서의 나날들이 생각나면 자연스레 하이바라가 생각났고, 그럴 때면 회의감이 강하게 들었다. 대충 해서 되는 일은 대충 하고, 노력해도 안되는 일은 애초에 시작부터 말아야 하는데. 그럼 너도 살아있었겠지. 이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난 계속 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날의 흐릿한 악몽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돈이 필요하다. 난 결국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우연히 간 베이커리에서 본 제빵사의 어깨에 올라탄 저급 주령. 괜히 나섰다가 괴상한 영매사로 오해받아서 귀찮아질 바에야 내 갈 길을 가는 게 낫다. 하지만 그날따라 가게를 나오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약간 무거웠다.
'자네가 퍼스트로 생각해야 할 건 회사의 이익이야.'
'발전 가능성 없는 쓰레기 주식을 말발로 팔아서라도요?'
'오브 코스!‘
나는 일의 보람이나 사는 보람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지급받으면 될 뿐. 이 지긋지긋한 저주도 타인도, 돈만 있으면 인연을 끊고 살 수 있다. 이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사장의 철학을 들을 때마다 늘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 즈음엔 유독 일이 많았다. 그러니까 내 인생이 다시 큰 전환점을 맞이하기 직전, 그땐 이틀에 한번 꼴로 회사에서 밤을 샜고, 철야 후에는 쪽잠을 자고 일어난 뒤 잠깐 빵을 사러 나갔다 오는 게 외출의 전부였다.
"괜찮으세요? 잠은 제대로 주무세요?"
"당신이야말로 피로가 쌓인 것 같은데요."
"아, 눈치채셨어요? 요즘 왠지 어깨가 무겁다고 할까, 잠도 깊이 못 자요."
"제가 하는 일은 부자한테서 돈을 맡아서 그 사람을 더욱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겁니다. 대략 그런 일이죠. 솔직히 제가 없어도 곤란한 사람은 없어요."
그래. 평범한 금융회사의 샐러리맨 하나가 사라져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누군가 죽지도 않는다.
"하지만 빵집이 없으면 빵을 먹고 싶은 사람은 곤란해질 겁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간의 사이클을 벗어난 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돈을 더 잘 번단 말이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자, 자랑인가요...?"
"아뇨."
그래, 정말 이상한 얘기다. 이건 자랑일 수가 없다.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죄송해요, 저한텐 좀 어려운 얘기네요."
"한 걸음만 앞으로 나와 주시겠어요?"
아직도 제빵사의 어깨 위에 태연히 올라탄 상태로 이쪽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승두 한 마리. 이 정도의 사소한 일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귀찮은 일이 아주 낮은 확률로 생긴다 해도 원래대로라면 또다시 모른 척 했을 텐데, 끊이지 않는 철야로 인해 잠시 사고회로가 굳은 것인지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됐다.
"어깨는 좀 어떻습니까?"
"어라? 가벼워졌네?"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면 병원에 가보세요. 그럼 전 이만."
"저기, 잠깐만요. 저기요! 고마워요! 또 와 주세요!"
고마워요⋯. 사는 보람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진작 알고도 외면하고 있던 것이었다. 주술사 한 명은 작게는 수십명, 나아가 수천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갑자기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나를 옥죄고 있던 죄책감이라는 갑갑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나나미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네, 내일이라도 주술고전으로 가서⋯ 왜 웃는 겁니까?"